2013년 12월 19일 목요일

이청준_전짓불 앞의 방백 - 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2

0. 12월 19일 오전 : 지하철과 연구실에서

1. 이청준의 소설 중에는 소설에 대한 소설이 있다. 소설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한다거나 이 소설을 읽는 작가는 누구이고 이를 읽는 독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이 때로는 인물의 지나가는 말에서 또 때로는 그 자체가 소설의 주요 내용이 되어 기술된다.

2. 이 소설은 후자에 가깝다. 이 소설은 사람들의 시선에 주눅들어 가까운 사람들의 경조사도 챙기지 않거나 때때로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까맣게 잊는 자기망실증을 고백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투쟁 구호를 외치는 학생과 이를 제지하려는 경찰 사이에서 설 자리를 차지 못하고 곤욕을 치른 A교수의 이야기, 6.25때 가족을 잃은 충격에 사람들을 멀리하는 외종형의 이야기, 일년 동안 혼신을 다해 연습한 피아노 연주를 중학교 2학년 학생들 앞에서 마치 연주회의 연주자처럼 정성껏 연주한 중학교 선생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소설은 개성적 삶과 사회적 삶을 동시에 드러내는 양식으로 이 둘의 갈등과 극복, 총체적 조화가 소설의 길임을 역설한다.

3. 이 소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독자에게 들려주는 혼잣말, 즉 방백이다. 인물의 행동과 사건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보다는 소설에 대한 서술자-작가의 신념이 몇 가지 일화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것이다.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에서 '박준'은 자신의 소설 쓰기를 전짓불 앞에서 강요당하는 생사를 건 선택에 비유하는데 이 글은 그러한 그러한 선택의 의미와 방향을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한다.


4. 서술자는 자신의 소설을 감시하는 전짓불이 개인적 진실과 사회적 공의임을 밝히는데 특히 후자에 의해 전자가 억압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5. 에세이의 형식을 갖춘 소설론이라 이청준의 문학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재미 있는 작품은 아니다. 다만 그의 소설에서 자주 반복되는 소재 중 하나가 소설 쓰기라는 점에서 그러한 소설들과 겹쳐 읽으면 깨닫는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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