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프리퀀시(Frequency, 2000)


2013년 12월 22일 가을바람과 함께




  우리는 종종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또는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이라고 말한다. 이런 바람이 잠언시집의 제목으로도 쓰인 것을 보면 지나간 과거를 바로 잡고 싶은 것은 실현 불가능하지만 강렬히 원하는 인간의 바람이다. 만약 그 과거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사건,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영화의 제목인 프리퀀시는 주파수로 번역할 수 있을텐데 바로 이러한 바람을 실현시켜주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영화 속 인물인 존 설리반은 1969년 10월 12일의 어느 화재로 소방관인 아버지를 잃은 1999년의 한 경찰이다. 그는 아버지의 30번째 기일 하루 전에 아버지가 사용하던 무선 통신기를 우연히 켜게 되는데 그렇게 작동된 통신기의 주파수가 닿는 곳은 놀랍게도 30년 전의 동일한 무선 통신기이다. 다시 말해 존은 1969년 10월 11일 무선 통신기를 사용하는 존의 아버지 프랭크와 통신하게 된 것이다. 과거와의 대화. 이는 '그때로 돌아가지 않더라고'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게 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존은 아버지 프랭크에게 10월 12일의 화재 사건에 대해 경고하고 그 경고 덕분에 프랭크는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모든 사건들도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프랭크가 살아나면서 원래 3명의 살해에서 끝난 미해결 연쇄 살인이 계속되고 피해자가 늘어나는데 불행하게도 그 희생자 중 한 명은 존의 어머니이다. 어머니마저 잃은 현대의 존과 자신의 회생에서 촉발된 불행에 경악하는 프랭크는 이제 연쇄살인을 막기 위해 통신을 계속한다.



  재미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영화의 두 축은 과거와의 대화와 가족애인데 후자가 전형적인 헐리우드 방식으로 실현되면서 전자가 가진 풍부한 서사성이 죽었기 때문이다. 영화 "동감", "나비효과" 등 다른 시간대의 인물들이 대화하거나 과거를 바꾸려는 것은 확실히 낯선 소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아직 충분히 이야기화되지 않은 새로운 소재이다. 인간은 시간 속에 살기 때문에 시간을 넘나들고 과거를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난제를 제기한다. 예를 들어 과거가 바뀐다고 해서 정말 현재의 삶이 바뀔 수 있는가라는 현실적 질문에서 개인적인 목적으로 과거를 바꿀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인 질문까지. 이러한 난제를 어떻게 영화 속에서 다루는가에 따라 이 소재는 인간 실존의 본질까지 사유할 수 있는 소재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과거와의 대화를 통한 현재의 변화는 철저하게 가족의 행복을 위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과학적 또는 철학적 질문,까지 가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질문들은 해소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1969년의 프랭크가 연쇄살인범의 손을 총으로 날려버리는 순간 1999년 존을 죽이려는 연쇄살인범의 손이 타들어가는 설정은 이 영화가 스릴러나 SF가 아닌 가족 드라마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극적인 사건은 행복하게 마무리되었지만 신선한 소재는 진부하게 끝이 났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주파수가 나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면 이 영화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라는 점 때문이다. 이 영화는 내게 아들이 생긴 후 그래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된 후 처음 본 영화이다. 그래서 그런지 존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프랭크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추억하고 비극적인 사건을 어떻게든 되돌리려는 존의 모습에서 따뜻함과 애잔함을 느꼈다. 내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깊게 남지 않았을 여운이라는 점에서 이것도 아들이 내게 준 선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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