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세월의 덫>과 <누군들 초장부터 꾼으로 태어나랴>를 읽었다.
<세월의 덫>은 어릴 때 헤어진 자매가 방송국의 어떤 프로그램에서 서로 재회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일단 언니의 다짐으로 끝나는 결말이 갑작스러워 당황스러웠다. 실제 이 소설은 12페이지 밖에 안되는데 다 쓰지 못한 소설의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소풍을 다녀온 동생을 업고 밤길을 걷는 언니의 회고는 그자체로 애잔하다. <눈길>에서 어머니가 아들과 함게 걸은 길을 되짚어 오는 이야기의 변주인데 가난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가족의 슬픔을 잘 그리고 있다.
<누군들 초장부터 꾼으로 태어나랴>는 자기 과시를 위해 온갖 시국담을 즐기고 과시하는 공만석의 이야기이다. 이웃, 사회, 나라의 일들을 걱정하고 비판하던 이 남자의 말들은 사실 자기 과시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방송국 출연을 보장해줄 것으로 믿던 자식들이 서울살이에서 크게 고충을 겪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시국담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재미있게 읽었다. 공만석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인터넷에서 조합한 지식과 교양으로 온갖 비판과 주장을 쏟아내지만 그것들이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은 삶이 아니라 자기과시이다. 사회나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말들이 자신의 일에서 기원하는 것은 사실 문제가 아닐 뿐더라 중요하다. 그 일상과 경험에 뿌리 내린 말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말들이 뿌리도 없는 유령 같은 말들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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