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어쩌다 공장에서 뒤를 늦게 본다고 감독에게 쥐어박히거나 혹은 재봉침에 엄지손톱을 박아서 반쯤 죽어 오는 적도 있다. 그러면 가뜩이나 급한 그 행동이 더 불이야 불이야 한다. 손에 잡히는 대로 그릇을 내던져 깨치며,
“왜 내가 이 고생을 해가며 널 먹이니, 응 이놈아?”헐없이 미친 사람이 된다. 아우는 그래도 귀가 먹은 듯이 잠자코 앉았다. 누님은 혼자 서서 제 몸을 들볶다가 나중에는 울음이 탁 터진다. 공장살이에 받는 설움을 모두 아우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면 하릴없이 아우는 마당에 내려와서 누님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고,“누님, 다 내가 잘못했수, 그만두.” (중략)영애는 톨스토이가 너무 병신스러운 데 골을 낸다. 암만 얻어먹더라도 씩씩하게 대들질 못하고 저런, 저런. 그러나 아키코는 바보가 아니라, 사람이 너무 착해서 그렇다고 우긴다.하긴 그렇다고 누님이 자기 밥을 얻어먹는 아우가 미워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나뭇잎이 등금등금 날리던 작년 가을이었다. 매일같이 하 들볶으니까 온다간다 말 없이 하루는 아우가 없어졌다. 이틀이 되어도 없고 사흘이 되어도 없고, 일주일이 썩 지나도 영 들어오지를 않는다.누님은 아우를 찾으러 다니기에 눈이 뒤집혔다. 그렇게 착실히 다니던 공장에도 며칠씩 빠지고, 혹은 밥도 굶었다. 나중에는 아우가 한을 품고 죽었나 보다고 집에 들어오면 마루에 주저앉아서 통곡이었다. 심지어 아키코의 손목을 다 붙잡고,“여보! 내 아우 좀 찾아 주, 미치겠수.”“그렇지만 제가 어딜 간 줄 알아야지요.”“아니 그런 데 놀러 가거든 좀 붙들어 주, 부모 없이 불쌍히 자란 그놈이.”말끝도 다 못 마치고 이렇게 울던 누님이 아니었던가. 아흐레 만에야 아우를 남대문 밖 동무 집에서 찾아왔다. 누님은 기뻐서 또 울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다시 들볶기 시작하였다.]
밀린 월세를 받으려는 셋방 주인과 어떻게든 미루려는 세입자 사이의 소동을 다룬 소설. 세입자는 여급 둘, 일용직 여공과 그 남동생, 버스걸과 그녀의 병든 아버지. "따라지"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인생은 적은 월세나마 세 달에 걸쳐 내야 할 만큼 보잘 것 없고 하찮다. 그렇다고 그들이 가난에 주눅들거나 자조하지는 않는다. 월세를 독촉하는 셋방 주인을 뻔뻔하다 싶을 만큼 공박하고 기어이 셋방을 치우는 행동에는 "남의 세간을 마음대로 꺼내냐"는 말로 모두 함께 맞선다.
이 소설의 재미는 도시 하층민의 궁핍한 삶과 거친 마음을 생생하게 재현하되 이를 직접적으로 긍정하기 보다는 인물들 간의 태도를 초점화함으로써 독자가 연민하게 하는 데 있다. 화자는 그들의 삶을 무작정 긍정하지 않는다. 난폭한 행동과 속된 마음은 궁핍한 삶으로 인해 거칠어진 인물의 내면을 현실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화자는 자주 인물들이 서로 불쌍해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장면을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이들 삶을 향한 화자의 정서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하며 더 나아가 독자에게도 동일한 연민의 정서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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