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12.-1.28.
리쾨르의 책을 읽다보면 가다머를 읽어야 하고 가다머를 읽다보면 하이데거를 피할 수 없다.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지도를 읽는다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다. 하이데거의 철학 중 특히 문학과 비평에 대한 하이데거의 사유에 초점을 맞춘다하여 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렵다. 그 어려움은 하이데거가 너무나 근본적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사유가 얕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사유를 전일적으로 경험하기에는 풍문으로 얽힌 하이데거에 대한 나의 기대 지평이 너무 치우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해석, 텍스트, 세계, 전유, 진리에 대한 리쾨르의 생각들이 어떤 사유를 징검다리로 삼아 전개된 것인지를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고 흥미로웠다. 앞으로 읽어야 할 논저가 많지만 성실한 읽기를 통해 좋은 삶의 전망을 여는 해석 교육의 지평을 촘촘하게 짜고 싶다.* 밑줄
- 존재역사 : 인간은 본질적으로 역사적이다. 인간은 해석과 전통의 다양한 층들로 이미 형성된 어떤 환경 속에 태어난다. 심지어 검토기에 가장 직접적인 사물들에 관한 감각과 그 사물들을 지각하고 생각하는 '나'에 관한 감각조차 그런 환경 속에 속해 있다. (...) 우리는 본질적으로 실천과 가정, 선입견, 습관, 전통들의 그런 연관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매일의 경험과 행위들을 형성한다. "한 사람은 그가 행위한 바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실존을 발견하는 저 '세계'는 정적이지 않다. 근본적인 태도와 가정들은 변화한다.(...) 이것이 하이데거의 개념 중 결정적으로 중요한 '존재역사'를 구성한다. 편의상 이 개념은 '심층역사'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61쪽)
- 전일주의 : 단순히 실존함으로써 인간 존재는 하나의 이론으로는 명백하게 번역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접근 방식을 갖는다. 그런 이해는 전일주의적이다. 말하자면, 그런 이해는 모두 함께 주어져 있거나 하나도 주어지지 않거나를 뜻한다. 무엇인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그것을 잘게 쪼갠 그 구정 부분을 뜻한다는 지배적인 기술적 가정을 통해서는 포착될 수 없다.(57쪽)
- 작품에서 세계의 기투, 대지적 성질, 색인 : 왜 문학작품은 색인을 갖지 않거나 가질 수 없는가? (중략) 왜냐하면 유의미할 수 있는 것과 텍스트에서 무의미한 것 사이를 구분 짓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새로운 독자가 거기에서 전체 작품의 충격에 걸맞은 함축, 색조나 목록의 중요 요소를 발견함으로써 텍스트에서 무의미하게 보이는 요소에 응답하는 것은 언제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중략) 한편에서는 '소리'와 다른 편에서는 '의미'로 자를 수 없는 직물의 한 부분이다. 그 직물은 그 양자 사이의 긴장으로 뒤엉킨 채 엮여있고, 그 긴장은 불안정한 대립 속에서 각자를 자기 자신에게로 가져온다. 그래서 [햄릿]은 이름 색인과 주제 색인으로 갈라짐을 허락지 않는다.(108-111쪽)
- 예술과 진리 : 하이데거는 위대한 예술이 우리 실존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요구를 함으로써, 진리의 문제에 연관됐던 방식으로 관심을 도린다. 그것은 새롭고 독특한 측면 아래에서 그 상황의 '세계'. 즉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보통 사유되지 않은 것, 전방성적 실천 그리고 지각 양태를 낯설게 만든다.(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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