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31. 집.
이를 말인가. 곧 서둘러 병원으로 데리고가서 으츠러진 발목을 잘라내던지 해야 일이 쉽겠다. 허나 이걸 데리고 누가 사무실로 병원으로 왔다갔다 성가신 노릇을 하랴. 염냥있는 사람은 군일에 손을안댄다. 게다 다행히 딴놈이 가루맡아 조급히 서둘르므로 아따 네멋대로 그 기세를 바짝 치우치며
[암! 어른 데리구가 약기 바라야지.]
가장 급한듯 저도 허풍을 피운다.(63쪽)
동무는 그걸 받아들고 방문을 나오며 후회가 몹시 난다. 제가 발을 깨지고, 피를 내고 그리고 감석을 지니고 나왔으면 둘을 먹을걸. 발견은 제가 하였건만 덕순이에게 둘을 주고 원쥔이 하나만 먹다니. 그때는 왜 이런 용기가 안났던가. 이제와 생각하면 분하고 절통하기 짝이 없다. 그는 허둥거리며 땅바닥에다 거츠르게 침을 퇴, 뱉고 또 퇴, 뱉고 싸리문을 돌아나간다.
이꼴을 맥풀린 시선으로 멀거니 내다본다. 덕순이는 낯을 흐린다. 하는 냥을 보니 암만해도, 암만해도 혼자 먹고 나라날 장번인듯. 허지만 설마.(65-66쪽)
금점판에 대한 짧은 소설. 김유정의 소설 중 금과 관련하여 가장 알려진 작품은 <금따는 콩밭>. 하지만 김유정은 1933년에 예산 쪽에서 "금광에 골몰"한 적이 있고 그 경험을 1935년에 3편의 소설, <노다지>, <금따는 콩밭>, <금>에 담아낸다.
초반부에는 광부들이 채광한 금을 빼돌리지 못하게 하려는 금점판 감독의 시선이 초점화되고 후반부에는 그럼 감독의 시선을 피해 금을 빼돌리는 광부의 시선이 초점화된다. 이야기는 비극적이다.
첫째, 금을 빼돌릴 수 있었던 방법. 동료와 금을 발견한 덕순이는 감독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돌을 자신의 다리에 내려찍는다. 금을 얻기 위해 병신이 되어야 하는 것.
둘째, 금을 빼돌려야 하는 이유. 가난함. "쓰려저가는 납작한 낡은 초가집, 고자리 쑤시듯풍풍 뚤어진 방문, 저방에서 두 자식을 데리고 계집을 데리고 고생만 무진히 한" 그 가난함.
셋째, 그럼에도 가난을 피할 수 없는 잔인한 운명. 덕순이는 다리와 맞바꾼 금을, 돈으로 바꾸어오겠다는 동무에게 건낸다. 과연 그 동무, "침을 퇴, 뱉고 또 퇴, 뱉고 싸리문을 돌아나"간 동무는 돌아올 것인가? 이 소설에서 그 뒷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다른 소설들이 불길한 예언처럼 기억된다. 금을 다룬 그 쌍둥이 소설들은 모두 동무의 배신으로 끝이 난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하층민들의 비극적 삶을 직시하는 소설이다. 이번에는 웃음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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