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1일 일요일

이청준, <이제 우리들의 잔을>, 문학과지성사, 2011.


"연재소설은 이미 작가가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진걸은 이번 연재에 대해서도 그리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신문을 부지런히 넘겨대며 소제목과 삽화만 대충 훑어 내려갔다.
- 어차피 또 마찬가지겠지. 여자가 나오고 아슬아슬하게 그 속옷을 벗기고....
그러나 진걸은 신문을 뒤적이다 말고 피식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 빌어먹을, 맨날 이런 것만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그렇게 되고 말았지 뭔가.
기묘한 낭패감이 가슴을 쳤다.
그는 방금 윤희에 대한 자신의 실패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건 뭐라고 해도 분명 실패로 끝난 게임이었다. 자신의 방법이라는 것도 그가 늘 핀잔을 해온 신문소설의 그것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었다.그렇다면 여태까지의 장담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자신도 미처 감당할 길이 없었던 터무니없는 허풍에 불과했을까"(339쪽.)

  이 소설은 여래암이라는 한 암자의 별채에 모여 기숙하는 인물들 - 고시생인 허진걸, 낙선한 정치인 김의원, 파계한 신부 안 선생, 사촌누이를 범하고 쫓겨난 노 군, 요양을 위한 온 지윤희 -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초점은 허진걸과 지윤희의 관계에 놓여있지만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서로 겹치면서 자서전에 대한 이야기, 신념에 대한 이야기, 연애에 대한 이야기로 서사의 줄기가 뻗어나간다.

  이청준의 소설답게 소설이라는 것, 소설 쓰기라는 것에 대한 성찰과 탐구가 눈에 띈다. 그중 신문 연재 소설에 대한 대타 의식이 강한데 이 소설이 실제 신문에 연재된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흥미롭다. 이 소설에서 허진걸은 신문 연재 소설을 즐겨 읽으며 그 문법에 대해 일가견을 지닌 인물인데 기존 신문 연재 소설에 대한 그의 비판은 곧 새로운 연재 소설의 문법을 만들어내겠다는 이청준의 선언처럼 읽힌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그러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는가. 그 답을 인용된 허진걸의 말에서 찾는다면 지나친 것일까. "늘 핀잔을 해온 신문소설의 그것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의 시도는 새로웠지만 연재 소설의 지평을 심화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새로운 시도의 의지와 실제로 소설을 연재하며 받아야 했던 외적 압력 사이에서 엉거주춤한 소설을 쓴 것처럼 보인다.

  너무 오래 읽은 책이다. '14년 여름에 첫 장을 열었는데 이런 저런 일로 꾸준히 읽지 못하였다. 그러다보니 기억에서 망실한 내용이 많고 전체 의미가 선명하게 들어오지도 않는다. 앞으로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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