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해석
나는 해석한다, 고로 존재한다.
2015년 7월 23일 목요일
결혼의 진화와 봄봄
EBS에서 꾸준히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중 하나가 다큐 프라임이다. 이번 주의 주제는 "결혼의 진화". 결혼의 과거와 현재를 확인하고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1부에서는 역사 속 다양한 결혼 제도를 소개하는데 데릴사위제도 그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학창시절에 읽어본 소설 "봄봄"으로 익숙한 제도이지 않을까.
'봄봄과 데릴사위'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받았다. 일정이 촉박했지만 관심을 두었던 작품이고 TV에 나온 아빠의 모습에 보일 아들의 반응도 궁금하여 출연하였다.
인터뷰 내용의 일부가 나레이션으로 처리되면서 분량이 많지 않아 은근히 아쉽더라. 하지만 연구해 볼 소품도 찾았고 무엇보다 TV 속의 나와 거실의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배실배실 웃는 아들을 보니 즐겁다.
2015년 7월 7일 화요일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
도서관에서는 대출 연기나 예약으로 빌리기 어려운 베스트셀러. 대신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이라는 책을 빌려 읽다가 결국 이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솔직히 제목에 매료되었다. 미움받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때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미움받아야 한다는, 평소에 줄곧 느꼈지만 명료하게 인식하지 않았던 생각을 날렵하게 단어로 포착한 제목.
행복에 관한 책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립해야 하며" "사화외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은 능력 있으며" "다른 사람은 내 친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의 자명함과 전략의 단호함에 여러 의구심이 들지만 그만큼 흡입력이 있다. 풍부한 사례들이 더해져 호소력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들러의 심리학에 대한 책이지만 행복을 논하는 윤리학의 관점이 엿보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 제시한 행동 목표와 실천 목표는 예를 들어 리쾨르가 정의한 윤리, "정의로운 제도에서 타자와 더불어 타자를 위해 좋은 삶을 지향하는 것"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공통점이 아들러의 것인지 아니면 이를 전유한 기시미 이치로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재미있는 접근이다. 좀 더 살펴볼 과제이다.
무엇보다 책에 접어둔 쪽이 많다. 예를 들어
인간관계라고 하면 보통 '두 사람의 관계' 혹은 '다수와의 관계'를 떠올리지. 그런데 자기 자신이 먼저라네. 인정받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으면 인간관계의 타드는 언제나 남이 가질 수밖에 없어. 인생의 카드를 남에게 맡길 것인가, 내가 쥘 것인가의 문제라네. 과제의 분리, 그리고 자유에 대해 한 번 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보게.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무시하기도 어려운, 곱씹어볼 내용들. 한 번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은 좋은 책이다.
경향소설의 최고봉이라는 평판만으로 부족한 고향의 재미
이기영의 "고향"
풍문으로 많이 듣고 강의를 위해 띄엄띄엄 읽은 것이 전부라 한번 완독하리라 벼르다가 이번에 다 읽었다. 5월부터 읽었으니 두 달이나 걸렸다. 621쪽이라는 긴 분량을 감안해도 너무 게으르게 읽었다. 한 권을 진득하게 읽지 못하고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는 습관때문이다. 좋지 못하다.
좋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인물의 성격이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김희준이 고향 농민들의 무기력함에 낙담하고 자신의 인텔리 근성을 반성하며 연애 감정에 번민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좋았고 농민들이 불합리한 소작 제도에 의해 피폐한 삶을 살면서도 이웃과 다투고 질투도 하며 뒷공론도 하지만 사랑도 하고 두레를 중심으로 화해하는 인물들이라는 점도 좋았다. 다른 소설이라면 악인으로만 그려졌을 안승확도 근대화의 경험과 경제적 논리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그런 점에서 재미있는 작품이다. 김희준이 고향으로 돌아와 청년회를 재건하고 두레를 결성하여 마름인 안승확과 담판을 짓는 큰 흐름 속에서 농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다루는데 인물들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묘사도 핍진하다. 개인적으로는 쇠득이네와 백룡이네가 싸우는 "이리의 마음"에 몰입하였다. 옆에서 구경하는 싸움처럼 생생하고 싸우는 당사자들의 입담도 아래와 같이 대단하다.
정자나무 밑에 앉았던 사람들이 우― 몰려갔을 때에는 두 과부는 밭머리에서 한참 이렇게 두발부리를 하고 나서, 마을로 내려와 가지고 재차로 시작한 싸움판이었다.
이번에는 두 집안 식구들이 편쌈을 벌인 판이다. 거기에는 쇠득이 처 국실이도 누구만 못지않은 강병이었다. 그는 백룡이 처와 상대가 되어 가지고 때로는 그의 모친에게도 좌충우돌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년들아! 늬년들은 부모도 없니? 누구보구 이년 저년 하고 사람을 땅땅 치니? 이 무지막지한 년 같으니!”
“이년아, 너는 누구보구 한데 껴놓고 이년들이라니? 늙은이가 하필 무슨 욕을 못 해서 화냥년이라니? 화냥질하는 걸 어떤 년이 봤니?”
“그년들 화냥질했다 소리가 그리 대단한가베! 이년아, 어미년이 화냥질하다 부족해서 자식년까지 시키면서 그런 소리를 어디서 벌리고 하니? 아가리가 남대문 구멍만해도 못 하겠다.”
쇠득이 모친이 머리꼬리를 감아 얹으며 며느리의 기세를 타서 공세를 취한다. 이 말은 마치 백룡이 모친의 얼굴에 모닥불을 끼얹는 것 같았다. 그는 금시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 가지고 마주 대들며 정가를 한다. 그는 차마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 이 바람에 이웃사람들은 백차일 치듯 길거리에 둘러서고 울타리 구멍과 삽짝문 틈으로 구경꾼의 눈은 그들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이년아! 네년은 네 메누리를 얼마나 잘 건사했기에 남의 숭을 보니? 늙은 불여수 같은 년아!”
“이 개 ×으로 빠진 년아! 누구보구 늙은 여수 같다니 내 메누리가 어쨌단 말이냐? 그래 이년아…….”
“저런 늙은 잡년 보았나! 이년아, 너도 메누리를 서방질시켜서 논을 얻지 앉었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보고 더럽다더니 저년이 그쪽일세!”
백룡이 모친은 인제는 독이 올라서 픽픽 웃으며 말하는 게 더욱 무서웁다.
“아이구 저런, 사람 잡아먹을 년 보아! 제년이 그라니까 남두 그라는 줄 알고…… 아이구 저런.”
쇠득이 모친은 기가 막힌 듯이 혀를 차고 발을 구른다. 그러나 백룡이 모친은 여전히 싱글싱글하며 모욕의 소낙비를 퍼붓는다.
“내가 사람 잡을 년이냐? 네년이야말로 그래서 사람을 잡어먹었지! 손자새끼 잡어먹지 않었니? 오장이를 죽이지 않었어? 샛서방을 닮어서 키울 수가 없으니까, 오장이에다가 담어서 실겅에다 얹어 죽이고 무엇이 어째? 수병장수한다기에 그랬더니 고만 죽었더라고, 이년아 어디다가 닭 잡어먹고 오리발 내미는 게야?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을 년들 같으니.”
무당 넋두리 같은 백룡이 모친의 목소리는 마치 경쟁이가 도깨비경을 읽을 때 귀신에게 추상 같은 호령을 하듯이 길게 내뽑는 여음(餘音)이 구경꾼들의 귀에까지 무시무시하게 들린다. 과연 구경꾼들도 처음 듣는 이 말에는 모두 혀를 내두르고 숨을 죽였다.
흥미로운 점은 소설의 어느 시점부터 문체가 상이하게 바뀐다는 점이다. 작가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인물의 성격은 평면적으로 바뀌고 행동보다 연설이 앞서고 사건의 흐름도 투쟁과 연애 이야기로 단선화된다. 김희준이 갑숙의 조언을 받아 그녀와 경호의 과거를 빌미로 안승확과의 투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결말은 개인적으로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이상하여 찾아보니 이기영이 카프 검거로 투옥되면서 고향의 뒷부분에 대한 연재를 김기진에게 부탁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김기진이 35,6회 분량을 뒷부분을 마무리하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단행본으로 낼 때도 이기영이 후반부를 고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는데 무엇보다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 고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끈 이유에 대해 좀 더 분석을 해보고 싶다. 김희준, 안승확을 비롯한 전형적 인물의 집단적 창조, 핍진한 묘사, 적절한 전망의 제시 등 이 작품이 지닌 장점은 많지만 이것만으로 이광수의 "흙"보다 두 배 이상 팔렸다는 이 작품의 대중성을 완전히 해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녀 간의 연애 이야기가 한 몫을 하고 서술자와 인물들의 입담도 즐겼으리라 본다.
2015년 7월 1일 수요일
아내의 기억할만한 출근
아내의 새로운 첫 출근일
골라입은 옷과 아들을 향해 흔드는 손짓에서 가벼운 설램이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 첫날의 많은 장면과 일정들이 즐겁게 떠오른다. 정해진 자리에 놓인 단단한 명패, 동기들과의 왁자지껄한 점심, 부푼 마음으로 처음 들어선 연구실, 돌담길을 끼며 퇴근하던 그때. 그때도 그렇게 느꼈지만 진실로 멋진 하루였다. 그 하루가 이제 그녀의 것.
기억에 남을 하루를 응원한다.
골라입은 옷과 아들을 향해 흔드는 손짓에서 가벼운 설램이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 첫날의 많은 장면과 일정들이 즐겁게 떠오른다. 정해진 자리에 놓인 단단한 명패, 동기들과의 왁자지껄한 점심, 부푼 마음으로 처음 들어선 연구실, 돌담길을 끼며 퇴근하던 그때. 그때도 그렇게 느꼈지만 진실로 멋진 하루였다. 그 하루가 이제 그녀의 것.
기억에 남을 하루를 응원한다.
2015년 2월 1일 일요일
김유정, 솟(1935), 원본김유정전집, 1987.
15.1.31.
집
김유정 소설의 인물군 중 흥미로운 인물이 들병이다. 병에다 술을 넣어 다니며 파는 사람으로 쉽게 말해 떠돌이 창녀. 이러한 들병이는 그의 소설 <총각과 맹꽁이>, <안해> 또는 <조선의 집시>라는 그의 수필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들병이에게는 남편이 있고 그런 남편은 아내에게 기생한다. <솟>은 들병이의 남편이 되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버리고 집의 가장 중요한 재산, 게다가 아내와의 행복한 추억이 어려있는 솥까지 떼어 오는 한 남편의 이야기다. 들병이에 홀린 철 없는 남자의 지질한 내면의 끝을 엿보는 것이 이 소설의 재미.
아내가 아리랑 타령도 못하고 돈 한푼 못벌기 때문에 싫다는 , 힘 안들고 돈을 벌며 곁에서 빌어먹을 수 있기 때문에 들병이가 좋다는 저 심리. 그 시작은 어디부터일까. 이 작품을 읽으며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구조을 열심히 찾았는데, 어쩌면 그것은 한 개인의 성격 탓으로 보기에는 너무 지질하고 혹시 저런 인간이 많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 한다.
집
몸이 괴로워지니 그는 안해의 생각이 머리속에 문득 떠오른다. 집으로만 가면 따스한 품이 기다리련만 왜 이 고생을 하는지 실로 알다가모를 일이다.
하지만 다시 잘 생각하면 안해 그까짓건 실혓다. 아리랑타령 한마뒤 못하는 병신, 돈 한푼 못버는 천치- 하긴 초작에야 물불을 모를만치 정이 두처웟스나 때가 어느 때이냐, 인제는 다 삭고 말엇다.
뭇 사람의 품으로 올마안기며 에쓱어리는 들병이가 말은 천하다 할망정 힘 안드리고 먹으니 얼마나 부러운가. 침들을 게게 흘리고 덤벼드는 뭇 놈을 이손저손으로 맘대로 후물르니 그 호강이 바히 고귀하다 할지라.(127쪽) 내일부터라도 게숙이를 따라다니며 먹을텐데 따는이것저것을 가리다는 죽도 못빌어 먹는다. 그 보다는 몸이 열파에 난대도 잘먹을수만 있다면이야 고만이아닌가-(129쪽)
김유정 소설의 인물군 중 흥미로운 인물이 들병이다. 병에다 술을 넣어 다니며 파는 사람으로 쉽게 말해 떠돌이 창녀. 이러한 들병이는 그의 소설 <총각과 맹꽁이>, <안해> 또는 <조선의 집시>라는 그의 수필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들병이에게는 남편이 있고 그런 남편은 아내에게 기생한다. <솟>은 들병이의 남편이 되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버리고 집의 가장 중요한 재산, 게다가 아내와의 행복한 추억이 어려있는 솥까지 떼어 오는 한 남편의 이야기다. 들병이에 홀린 철 없는 남자의 지질한 내면의 끝을 엿보는 것이 이 소설의 재미.
아내가 아리랑 타령도 못하고 돈 한푼 못벌기 때문에 싫다는 , 힘 안들고 돈을 벌며 곁에서 빌어먹을 수 있기 때문에 들병이가 좋다는 저 심리. 그 시작은 어디부터일까. 이 작품을 읽으며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구조을 열심히 찾았는데, 어쩌면 그것은 한 개인의 성격 탓으로 보기에는 너무 지질하고 혹시 저런 인간이 많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 한다.
김유정, 금(1935), 원본김유정전집, 1987.
15.1.31. 집.
이를 말인가. 곧 서둘러 병원으로 데리고가서 으츠러진 발목을 잘라내던지 해야 일이 쉽겠다. 허나 이걸 데리고 누가 사무실로 병원으로 왔다갔다 성가신 노릇을 하랴. 염냥있는 사람은 군일에 손을안댄다. 게다 다행히 딴놈이 가루맡아 조급히 서둘르므로 아따 네멋대로 그 기세를 바짝 치우치며
[암! 어른 데리구가 약기 바라야지.]
가장 급한듯 저도 허풍을 피운다.(63쪽)
동무는 그걸 받아들고 방문을 나오며 후회가 몹시 난다. 제가 발을 깨지고, 피를 내고 그리고 감석을 지니고 나왔으면 둘을 먹을걸. 발견은 제가 하였건만 덕순이에게 둘을 주고 원쥔이 하나만 먹다니. 그때는 왜 이런 용기가 안났던가. 이제와 생각하면 분하고 절통하기 짝이 없다. 그는 허둥거리며 땅바닥에다 거츠르게 침을 퇴, 뱉고 또 퇴, 뱉고 싸리문을 돌아나간다.
이꼴을 맥풀린 시선으로 멀거니 내다본다. 덕순이는 낯을 흐린다. 하는 냥을 보니 암만해도, 암만해도 혼자 먹고 나라날 장번인듯. 허지만 설마.(65-66쪽)
금점판에 대한 짧은 소설. 김유정의 소설 중 금과 관련하여 가장 알려진 작품은 <금따는 콩밭>. 하지만 김유정은 1933년에 예산 쪽에서 "금광에 골몰"한 적이 있고 그 경험을 1935년에 3편의 소설, <노다지>, <금따는 콩밭>, <금>에 담아낸다.
초반부에는 광부들이 채광한 금을 빼돌리지 못하게 하려는 금점판 감독의 시선이 초점화되고 후반부에는 그럼 감독의 시선을 피해 금을 빼돌리는 광부의 시선이 초점화된다. 이야기는 비극적이다.
첫째, 금을 빼돌릴 수 있었던 방법. 동료와 금을 발견한 덕순이는 감독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돌을 자신의 다리에 내려찍는다. 금을 얻기 위해 병신이 되어야 하는 것.
둘째, 금을 빼돌려야 하는 이유. 가난함. "쓰려저가는 납작한 낡은 초가집, 고자리 쑤시듯풍풍 뚤어진 방문, 저방에서 두 자식을 데리고 계집을 데리고 고생만 무진히 한" 그 가난함.
셋째, 그럼에도 가난을 피할 수 없는 잔인한 운명. 덕순이는 다리와 맞바꾼 금을, 돈으로 바꾸어오겠다는 동무에게 건낸다. 과연 그 동무, "침을 퇴, 뱉고 또 퇴, 뱉고 싸리문을 돌아나"간 동무는 돌아올 것인가? 이 소설에서 그 뒷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다른 소설들이 불길한 예언처럼 기억된다. 금을 다룬 그 쌍둥이 소설들은 모두 동무의 배신으로 끝이 난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하층민들의 비극적 삶을 직시하는 소설이다. 이번에는 웃음기도 없다.
2015년 1월 28일 수요일
티머시 클라크, 마르틴 하이데거 너무나 근본적인, 김동규 옮김, 앨피, 2008.
'15.1.12.-1.28.
리쾨르의 책을 읽다보면 가다머를 읽어야 하고 가다머를 읽다보면 하이데거를 피할 수 없다.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지도를 읽는다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다. 하이데거의 철학 중 특히 문학과 비평에 대한 하이데거의 사유에 초점을 맞춘다하여 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렵다. 그 어려움은 하이데거가 너무나 근본적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사유가 얕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사유를 전일적으로 경험하기에는 풍문으로 얽힌 하이데거에 대한 나의 기대 지평이 너무 치우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해석, 텍스트, 세계, 전유, 진리에 대한 리쾨르의 생각들이 어떤 사유를 징검다리로 삼아 전개된 것인지를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고 흥미로웠다. 앞으로 읽어야 할 논저가 많지만 성실한 읽기를 통해 좋은 삶의 전망을 여는 해석 교육의 지평을 촘촘하게 짜고 싶다.* 밑줄
- 존재역사 : 인간은 본질적으로 역사적이다. 인간은 해석과 전통의 다양한 층들로 이미 형성된 어떤 환경 속에 태어난다. 심지어 검토기에 가장 직접적인 사물들에 관한 감각과 그 사물들을 지각하고 생각하는 '나'에 관한 감각조차 그런 환경 속에 속해 있다. (...) 우리는 본질적으로 실천과 가정, 선입견, 습관, 전통들의 그런 연관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매일의 경험과 행위들을 형성한다. "한 사람은 그가 행위한 바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실존을 발견하는 저 '세계'는 정적이지 않다. 근본적인 태도와 가정들은 변화한다.(...) 이것이 하이데거의 개념 중 결정적으로 중요한 '존재역사'를 구성한다. 편의상 이 개념은 '심층역사'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61쪽)
- 전일주의 : 단순히 실존함으로써 인간 존재는 하나의 이론으로는 명백하게 번역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접근 방식을 갖는다. 그런 이해는 전일주의적이다. 말하자면, 그런 이해는 모두 함께 주어져 있거나 하나도 주어지지 않거나를 뜻한다. 무엇인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그것을 잘게 쪼갠 그 구정 부분을 뜻한다는 지배적인 기술적 가정을 통해서는 포착될 수 없다.(57쪽)
- 작품에서 세계의 기투, 대지적 성질, 색인 : 왜 문학작품은 색인을 갖지 않거나 가질 수 없는가? (중략) 왜냐하면 유의미할 수 있는 것과 텍스트에서 무의미한 것 사이를 구분 짓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새로운 독자가 거기에서 전체 작품의 충격에 걸맞은 함축, 색조나 목록의 중요 요소를 발견함으로써 텍스트에서 무의미하게 보이는 요소에 응답하는 것은 언제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중략) 한편에서는 '소리'와 다른 편에서는 '의미'로 자를 수 없는 직물의 한 부분이다. 그 직물은 그 양자 사이의 긴장으로 뒤엉킨 채 엮여있고, 그 긴장은 불안정한 대립 속에서 각자를 자기 자신에게로 가져온다. 그래서 [햄릿]은 이름 색인과 주제 색인으로 갈라짐을 허락지 않는다.(108-111쪽)
- 예술과 진리 : 하이데거는 위대한 예술이 우리 실존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요구를 함으로써, 진리의 문제에 연관됐던 방식으로 관심을 도린다. 그것은 새롭고 독특한 측면 아래에서 그 상황의 '세계'. 즉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보통 사유되지 않은 것, 전방성적 실천 그리고 지각 양태를 낯설게 만든다.(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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